오후 8시쯤엔 피곤을 참지 못하고 잠깐 눈을 붙였다.
평소처럼 10시30분에 퇴근을 했다. 지하철에서 "부사적 존재론"에 대한 몇몇 글을 읽었다. 모든것은 돌고돌아 아리스토텔레스에게로 향한다.
버스를 타고, 헨델의 클라브생작품집을 선택하고, 김소연의 시집 <극에 달하다>를 조심스럽게 꺼내든다.
작고 낮은소리로 담백하게, 약간은 냉소적인 그에 목소리가 내 입을 통해 귀에 전해진다. 그 목소리는 여전히 낮지만 집중해서 듣고 있으면 굉장히 날카롭다. 위엄이 가득한 정복자의 목소리 같기도 하다. 삶을, 시간을 내려다 보는것 같은 이 목소리는 애잔했다. 언어로 눈도 뽑고, 귀도 댕강 자르고, 팔도, 다리도, 결국 화살이 심장을 관통해도, 이정도야 늘상 있는 일이며, 살아가는 동안 이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라는듯 담담하게 말한다.
"그저 지루한 인생 백일을 도려냈다는 큰일을 우리는 찬양했다"는 목소리가 계속 따라오고 있다. 서른쯤에 써내려간 그에 시들, 그럴만도 할꺼다. 서른살이 된다는것 서른살에 시인은 냉소적일 수밖에, 마흔살에 그는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을까?
아픔을 함께 하고 싶었다. 아파할때 마음껏 아파하게 두고, 나역시 똑같이 아파하다, 따스한 밥한끼 함께하는 그런 사람으로 존재하고 싶었다.
"서로의 아픔을 헛짚은체, 서로의 성감대를 착각한체" 살고 있겠지, 때때로 변경되는 명사들을 바라보다, 어떤 명사가 그대인지 알지 못한체 잊혀지겠지, 세월로 가름하고 얆으로 가름하다가 갈갈이 부서진체 사라지겠지, 내게서 떠났지만 그대에게 도착하지 않은 인덱스들은 돌아오지 못하겠지. 하늘에 계신 어머니는 이런 나를 그래도 가엽다 하며 안아 주시겠지. 그래도 내가슴에 새겨진 '사랑'이란 낙인은 그대로이겠지.
나는 증오를 품은체 살아가겠지, 나는 괜챤은 사람일순 있어도 결코 좋은 사람은 못되겠지.
나는 참 좋은 사람이고 싶었했다.
나는 참 좋은 사람이고 싶었했다.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의 단상,표현,고독 그리고 (0) | 2011.12.19 |
---|---|
관중생품(觀衆生品) - 유마경 (0) | 2011.11.12 |
울림 (0) | 2011.06.14 |
왜(pourquoi)? (0) | 2011.06.12 |
Fade-out (0) | 2011.06.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