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선생은 소설가 오정희가 조금만 더 불행한 삶을 살았다면 좀더 훌륭한 소설을 쓰지 않았을까 하며 조금은 안타까와 했다고 한다.
사실 난 소설을 즐겨 읽지 않는다. 무슨 건방인지 모르지만, 소설따위는 스무살이 되기 전에 다 읽어서 읽을게 없다고 생각했다. 어이없는 자만이지만 사실 그랬다. 지난날 읽은 많은 소설중에 유난히 기억에 남는 소설이 몇 있는데 그중 처음으로 꼽는게 바로 이 작품이다.
이소설엔 내 이십대의 화두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난 봄부터 1986년으로 돌아가 그때의 책들을
읽고 있다. 지금은 그렇치 않치만 여자들을 많나면 난 이책을 꼭 읽어 보라고 했다.
그녀의 무의식을 알길 없는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서로 사랑해서 결혼한 부부이지만 그녀의 내면이나 무의식에 대해 생각하기 조차 싫어하는( 나또한 그러하다) 그런 남자.
그녀는 그녀의 방식대로, 자신의 의식을 분석해 본다.그러나 그것이 끝이다. 소설속에선 결국 그녀가 그토록 알고 싶었던 유년의 비밀을 알지 못한다. 그녀가 심리학에서 말하는 "비의식속에 상처받은 아이" 혹은 아니무스를 만나게 될지는 별로 궁금하지 않다. 아마도 많은 여성들이 이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할것같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세중(남편)의 입장이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위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나역시 그와 별반 차이가 없지 않았을까 한다.
세중이 현실적인 인간이기 때문에, 그녀의 아픔을 이해해 주지 않았을 수도 있다.또 인간 내면의 복잡함을 알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남자(여성도 그러하겠자만, 특히)의 30대 초반은 아마도 치열한 페르소나의 정립기라고 볼수있다.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린다는것. 특히 그 가정의 경제력을 책임져야 하는 남자에게 무의식과의 만남을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페르소나와 자아와의 괴리감속에서 살아남기에도 벅찬 시대가 아니던가.
그러기에 남자는 무의식에 대한 그 두려운 탐험을 스스로 단절해 버린지도 모르겠다.아니 최소한 나는 그러했다.
20대시절 이 소설을 읽은후 오랫동안 그와 그녀의 말들을 안고 살았다.그저 삶에 대한 상실, 그 절망적인 느낌들..오랜만에 다시본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내내 안타까운 감정을 느낀다.사람에 대한 사랑은 진정 무엇일까.혹..그, 그녀속에 스스로도 알길없는 무의식을 깨워 만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사실 난 소설을 즐겨 읽지 않는다. 무슨 건방인지 모르지만, 소설따위는 스무살이 되기 전에 다 읽어서 읽을게 없다고 생각했다. 어이없는 자만이지만 사실 그랬다. 지난날 읽은 많은 소설중에 유난히 기억에 남는 소설이 몇 있는데 그중 처음으로 꼽는게 바로 이 작품이다.
이소설엔 내 이십대의 화두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난 봄부터 1986년으로 돌아가 그때의 책들을
읽고 있다. 지금은 그렇치 않치만 여자들을 많나면 난 이책을 꼭 읽어 보라고 했다.
"다만 그냥 그럴 때가 있어요. 그냥 어떻게 이렇게 평생을 사나, 사는 게 이런 건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해요"그녀는 자신의 가출에 대한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확실히 말해 두지만 나는 삶에 대한 어떠한 감상도 없었다. 태어남이 자유 의사에 의한 것이 아니듯, 죽음도 또한 자연의 한 현상일뿐 인간이란 꼭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며 생애를 걸고 이루어야만 할 무엇이 있다고도 생각치 않았다. 더욱이 우리의 시대는 우리에게 혁명도 연애도 요구하지 않는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살고, 또 죽을 것이다"
그녀의 무의식을 알길 없는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서로 사랑해서 결혼한 부부이지만 그녀의 내면이나 무의식에 대해 생각하기 조차 싫어하는( 나또한 그러하다) 그런 남자.
전쟁통에 부모를 잃은 아이는 너 뿐이 아니라는 어머니의 말대로 평범한 사실 앞에, 남몰래 키워 왔던, 자신의 운명에 대한 비장함 따위는 응석이 아니었던가. 무었보다도 현실은 과거를 보상할 수 없다는, 과거의 사실로 인해 현실은 변명되고 보호되지 않는다는 명료한 인식 때문이었다. 그러나 때없이 등을 밀리듯 보이지 않는 바람의 손길에 잡히듯 집을 떠나 헤메게 하던 자신의 고아 의식은 현실을, 삶을, 삶의 권태를, 열정을 견뎌낼 수 없었던 자의 핑계였던가"
그녀는 그녀의 방식대로, 자신의 의식을 분석해 본다.그러나 그것이 끝이다. 소설속에선 결국 그녀가 그토록 알고 싶었던 유년의 비밀을 알지 못한다. 그녀가 심리학에서 말하는 "비의식속에 상처받은 아이" 혹은 아니무스를 만나게 될지는 별로 궁금하지 않다. 아마도 많은 여성들이 이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할것같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세중(남편)의 입장이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위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나역시 그와 별반 차이가 없지 않았을까 한다.
세중이 현실적인 인간이기 때문에, 그녀의 아픔을 이해해 주지 않았을 수도 있다.또 인간 내면의 복잡함을 알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남자(여성도 그러하겠자만, 특히)의 30대 초반은 아마도 치열한 페르소나의 정립기라고 볼수있다.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린다는것. 특히 그 가정의 경제력을 책임져야 하는 남자에게 무의식과의 만남을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페르소나와 자아와의 괴리감속에서 살아남기에도 벅찬 시대가 아니던가.
그러기에 남자는 무의식에 대한 그 두려운 탐험을 스스로 단절해 버린지도 모르겠다.아니 최소한 나는 그러했다.
20대시절 이 소설을 읽은후 오랫동안 그와 그녀의 말들을 안고 살았다.그저 삶에 대한 상실, 그 절망적인 느낌들..오랜만에 다시본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내내 안타까운 감정을 느낀다.사람에 대한 사랑은 진정 무엇일까.혹..그, 그녀속에 스스로도 알길없는 무의식을 깨워 만나게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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