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이 타오르는 날이면
가슴 앓는 그대 정원에서
그대의
온밤 내 뜨겁게 토해내는 피가 되어
꽃으로 설 것이다.
그대라면
내 허리를 잘리어도 좋으리,
짙은 입김으로
그대 가슴을 깁고
바람 부는 곳으로 머리를 두면
선 채로 잠이 들어도 좋을 것이다.
기형도의 시를 처음 만난건 86년도 가을쯤으로 기억한다. 그때 난 주변인 이었다. 요즘말로 하면 잉여.
새벽 한 라디오 프로에서 '시'를 낭송해 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곳에서 그의 신춘문예 당선작 인 '안개'를 접하게 되었다.
그때까지 내게 있어 시는 감수성 예민한 여학생들의 유치찬란한 놀이였을 뿐이었다. 무엇이 내 감정을 자극했는지 알수는 없다. 허나 그 시를 듣고, 마치 넋이 나간것 처럼, 밖으로 뛰쳐 나가 안개속을 미친개처럼 한참을 쏘다니다. 동네 초등학교에 갔을때 운동장에 무릅높이로 마치 호수처럼 갇혀 있는 안개를 만났다.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었다.
아마. 그게 내가 문학을 그중에서도 시를 사랑하게 된 계기가 된것같다. 감당하기 힘들었던 열병은 그때 부터 시작된것인지 모른다.
"꽃" 이란 시는 그의 유고시집 에 수록된 시는 아니며 나중에 미발표시를 모은 에 수록된것인지 전집에 수록된 것인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이 시를 나역시 올해 4월 우연치 않게 찾게 되었다. 아마도 내가 99년에 를 구입했을때 기억이 없는 걸 봐서는 그에 전집에 수록되어 있는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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