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간 행위를 조롱하거나 한탄하거나 경멸하기보다는 이해하기 위해서 끊임없는 노력을 경주해 왔다

베네딕트 스피노자,정치논고,167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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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엽감는 새 - 무라카미 하루키

아펙트 2010. 7. 2. 20:53
내가 하루키를 읽게 될 줄이야.
실로 오랜만에 소설책을 돈내고 샀다.
폰트좀 줄이고 여백조정하면 2권이면 될껄 4권으로 나눠서 출판한 출판사의 상술이 일단 짜증난다.
그러나 어쩌리..그들도 먹고 살아야지..문학사상사가 이렇게 타락할 줄 몰랐다.
책 뒷면에 인쇄된 주제완 무관한 자극적인 선전문구 "충전이 필요해요, 날 꼭 안아 주세요." 같은.

그러나 난 이책을 읽어야만 했다.
누군가 내게 말했다. 마미야중위가 가죽벗기는 보리스를 죽이지 못한건 자격이 없기 때문이라고, 마미야중위는 사막의 우물속에서 삶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내게 당신의 꿈은 이미 스무살때 상실된 것이라고 했다.
난 근 20년만에 소설을 읽어야만 했다. 그리고 한달가까이 하루끼를 읽었다.하루끼를 읽는 내게 아내는 "어때? 읽을만해?" 라며 물어 본다."응..그럭저럭 읽을 만 해!!" 라고 답했다.
 
1권, 2권은 어느정도 흥미를 충분히 느낄만 했다. 마치 모든것을 통달한듯한 하루끼의 문장이 좀 걸리기는 했지만 3권,4권은 이전에 힘을 잃은듯 겉도는 느낌이다. 작가 자신은 일본작가의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고 했고, 그래서 자신의 문체는 일본 특유의 문체가 아니라고 했지만, 작가 자신의 무의식속에 수천년을 이어 내려오는 집단무의식은 감출수 없는 법이다. 그역시 일본인이고 일본인 특유의 향이 그의 문체에서 났다. 긴 스토리속에 잠깐씩 무겁지만 가벼운 철학적 사유들, 너무나 잘 표현되는 문장들이 아마 젊은층들에게 어필하는듯 하다. 나역시 그의 문장들이 나쁘지 않다. 허나 공허함이 드는 이유는 아직 무엇때문인지 모르겠다.
 
그가 평소에 썼던 글들과 어딘지 닮아 있는 문체들. 3권째를 읽고 있다. 사실 3권에선 조금 우려가 들기까지 했다. 왠지 힘을 잃어가는 듯한 짜임새라고 할까. 2권에서 보여준 팽팽한 긴장감이나, 삶에 대한 냉철한 비판이런것이 사라지고, 짧은 담론들같은 내용들이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다.

벌써 2주째가방속에서 내뒹구는 하루끼 어느 순간부터서인가 그 힘을 잃은채, 겉돌고 있는듯한 느낌.  태엽감는새는 가노 마루타가 홀연히 사라지면서 내 정신을 겉돌고 있다.  읽히지 않는다. 재미가 없다. 구도가 깨진거 같다. 하루끼는 이 긴 글속에서 내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이리저리 들쑤시고 나서. 어떻게 마름질 하려 하는것인가
가사하라 메이만 남아 있다.
 
아무튼 그렇게 소망하던 하루끼의 소설을 읽었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이슈화되는 작가인지는 솔찍히 알수가 없었다. 환상적이기엔 이외수가 좀더 나은듯 하고, 기발하기엔 베르나르가 좀더 기발하게 느껴졌다. 내겐 그냥 좀 스펙터클하고 판타지적이면서 철학적 사유를 나름 담고 있는 그저 글 잘쓰는 작가일뿐 그가 까뮈나 사르트르나 그리니에 같은 류의 철학적 사유를 담은 것 같지는 않고, 그렇다고 헤세처럼 인간심리를 분석하는 거 같지는 않은 느낌이다.
 
난 마미야중위가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하루끼의 주장에 절대 동의 할 수 없다. 마치 사유로 모든 실존을 이해하는 듯한 그의 주장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그에 말을 뒤집는 다면 마미야중위가 가죽벗기는 보리스를 죽이지 못한것이 아니라, 보리스가 그 때에 죽을 운명이 아니었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그리고 그의 운명적 철학이 불편하다. 운명적이라면서, 뭘 구차하게 글을 쓰는가. 어차피 다 정해져 있는 것인데, 그저 순응하며 살아가면 그뿐이 아닌가.
 
하루끼를 끝으로 당분간 소설읽기를 멈출것이다.그동안 내 독서는 인문학과 순수문학에만 치중해 있었다. 이젠 사회과학쪽의 책들도 읽어야 되지 않을까 느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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